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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준비(7) - 중간점검
유학 준비 중간 점검
분명 처음에는 블로그에 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게 말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우선 매달 새로운 사건이 생기거나 생각이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연구실 생활도 어느덧 1년이 넘어가면서 일상이 많이 안정되었다. 그리고 매달 글을 남기다 보니 조금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어쩌면 그 욕심 때문에 글을 쓰기도 전에 스스로 검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달은 조금 담백하게 남겨보고자 한다.
유학 준비 잘 되어가고 있나?
처음 세웠던 계획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지 않다. 어학 점수도 확보했고 논문도 열심히 쓰고 있지만, 원래는 올해 말에 미국 박사과정 원서를 쓰고 싶었다. 이쯤 되면 굵직한 국제학회 논문도 두 편 정도는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논문을 제출하고 결과를 받기까지 보통 3개월 정도가 걸린다. 학부연구생 기간까지 포함해도 약 14개월이었으니, 단순히 계산해도 제출할 수 있는 기회가 네 번 정도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중 두 편을 채택시키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정작 연구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시간은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꽤 무리한 목표였다. 최근 채택된 논문도 탑티어 학회는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 망했나?
그렇지는 않다. 지난 14개월 동안 첫 논문을 완성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운 좋게 좋은 실험 결과를 먼저 얻고, 이를 논문으로 만드는 순서로 연구를 진행한 덕분에 리뷰어들에게 호되게 혼났다. 그 과정에서 연구 질문이 왜 중요한지, 좋은 질문은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는지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최근 KAIST 교수님이 오셔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내심 뿌듯했다. 1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목표했던 만큼의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요즘은 어떻게 사는가?
뭐든 시간이 걸린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모르는 상태에서 헤매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꼭 시간 낭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하다 몸이 아파봐야 준비운동과 자세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논문이 리젝되어 봐야 좋은 연구 질문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굳이 실패하지 않고도 배울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그 시간이 전부 낭비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서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말 열심히 하더라.
그렇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내 주변 사람들이 워낙 열심히 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번아웃을 겪고 있다. 나 역시 완벽주의도, 결과에 대한 집착도, 일중독에 가까운 생활도 경험해 봤다. 그러면서 느낀 건 몸도 정신력도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당장의 성과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오래 이어가야 할 목표를 놓치기 쉽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삶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말이 이제는 조금 와닿는다. 열심히 사는 것만큼이나, 오래 열심히 살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건강에 관심이 많다.
서른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하던 것들이 조금씩 힘들어졌다. 밤을 새우면 며칠씩 피곤하고,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멀쩡했는데 이제는 몇 시간만 앉아 있어도 목과 허리가 아프다. 예전에 스탠퍼드에 방문했을 때, 박사과정 분들이 정말 열심히 생활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시간 관리를 굉장히 잘하시나 보다 생각했는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오래 연구하려면 운동이나 취미처럼 연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들도 필요하겠구나 싶다. 최근에는 웨이트와 등산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다. 몸의 균형이나 자세를 신경 쓰게 되고, 단백질은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다음에는 어떤 산을 올라갈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한동안 생산성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요즘은 일상의 즐거움이자 하루를 버티는 원동력이 되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 건가?
연구를 조금 더 제대로 해보고 싶다.
이제야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감을 잡은 것 같다.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 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논문을 왜 읽어야 하고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도 예전보다는 명확해졌다. 물론 아직 모르는 게 훨씬 많지만, 적어도 무엇을 모르는지는 조금씩 알게 되고 있다. 앞으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연구에 집중해 보고 싶다. 졸업하기 전까지 제1저자로 SCI급 저널 논문 한 편, 그리고 지금보다 좋은 국제학회에 논문 한두 편 정도를 더 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참고로 졸업까지는 약 1년 남았다. 이번에는 목표를 세울 때 실제 연구에 필요한 시간도 충분히 고려해야겠다.
영어 공부도 조금 더 해야겠다.
어학 점수를 위한 공부는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는 것과 시험 점수를 받는 것은 확실히 다른 문제다. 당장 내년 1월에 시카고로 교환연구를 가게 되는데, 현지 교수님들과 내 박사 진학 계획이나 연구 주제를 직접 이야기하려면 지금보다 유창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마 캠블리 같은 화상영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것 같은데, 좋은 방법이나 정보가 있다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무엇보다 건강해지고 싶다.
요즘 운동과 등산이 생각보다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체중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도 재미있고, 이전보다 무거운 중량을 드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등산은 참 묘하다. 올라갈 때는 죽을 것처럼 힘든데, 잠깐 쉬었다가 다시 걷다 보면 어느새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있다. 한라산도 등반하는데 성공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잘 준비해서 올라가 보고 싶다. 더 나아가, 박사과정으로 미국에 가서도 이런 취미들을 계속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구를 방해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취미들이 되었으면 한다.
닫는 말

이번 달에는 특별히 거창한 이야기를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돌아보니 유학 준비는 원래 계획보다 느리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아깝거나 후회되진 않는다. 연구에 대해서도, 생활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조금은 알게 된 것이 많다. 무엇보다 요즘은 일상이 꽤 만족스럽다. 여전히 이루고 싶은 목표는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그 과정에서 운동도 하고, 산도 오르고,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학부연구생 기간까지 포함하면 실질 박사지원까지는 28개월. 이번 달은 딱 14개월차로 반환점이다. 전반부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았으니까, 후반부에는 더 잘 균형잡아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규칙적이고, 너무 가혹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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